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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칼럼] 인사이드 아임 댄싱

2020-01-15조회수 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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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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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가진 이들에 대한 영화라는 사실을 모르고 포스터를 봤다면, 방황하는 청춘에 대한 영화로 착각했을 것 같다. 그런데 나한테 편견이 있었나 보다. 장애를 가진 청춘의 이야기라고 왜 생각하지 못한 걸까?
마이클은 신체활동은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뇌병변장애로 인해 정상적인 언어활동이 불가능하다. 평생을 시설에서 편하게 지내왔지만 그의 생활은 무료하고 공허해 보인다. 로리는 근육장애로 오른쪽 두 개의 손가락을 제외하고는 움직일 수 없다. 피어싱을 하고 무스로 한껏 멋낸 염색머리, 그리고 반항적인 표정만 봐도 마이클과는 정 반대의 성격으로 느껴진다.
남들에게는 그저 신음소리 같은 마이클의 언어를 로리는 정확하게 해석해낸다. 로리는 어렸을 때부터 장애를 지닌 아이들과 지냈기 때문에 마이클과 소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몇십 년을 마이클과 지내온 시설 보조인은 제대로 된 소통을 하지 못했다. 직접 겪지 않고는 이들의 불편함과 공허함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자유분방한 로리는 온실 속의 화초 같은 마이클을 변화시킨다.
두 사람은 많은 것에 도전하는데, 그 중에도 클럽 장면이 뇌리에 남는다. 팔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이며 흔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마이클과 로리는 휠체어를 힘차게 돌린다. 이 때 로리의 눈빛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토록 원하던 자유지만 신체적 한계에 대한 분노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이 담겨 있었다. 청춘이지만 휠체어에 앉은 채 답답한 생활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들이 클럽에 와서 몸을 흔들고 싶을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로리는 이런 편견을 깨고 싶었던 것 같다. 의문이였던 영화 제목 ‘인사이드 아임 댄싱’이라는 말도 이 부분에서 이해가 되었다. 비록 자유롭게 춤을 출 수는 없지만 이들은 그 어느 청춘과 같이 자유롭고 싶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시설을 나와 독립하게 된 마이클과 로리는 행복해 보였지만 무언가 더 큰 장애물이 이들을 기다릴 것만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마이클은 활동보조인으로 일하게 된 시반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로리는 좋아하는 마음을 시반에게 표현하지 말라고, 그녀는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충고한다. 그럼에도 마음을 숨길 수 없었던 마이클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감정을 드러내고, 크게 상처를 받는다. 상대도 나를 좋아할지 고민하고 아파하는 사랑도 충분히 고통스러운데,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사랑에 한계를 느낀다면 얼마나 힘들까? 게다가 자신의 사랑을 거절당했음에도, 활동 보조인 없이는 힘든 현실이 얼마나 답답할까. 타인의 도움이 항상 필요하다는 사실도 이들에게는 큰 부담과 짐일 것 같다.
앞서 나에게도 편견이 있었다고 말했다. 로리와 마이클과 같은 사람들을 보고 그들도 ‘청춘’이라는 생각을 먼저 했던 적이 있던가? 그들의 신체적 불편함을 인식하기 전에 누리고 싶을 삶의 형태에 대한 이해가 앞서야 하는 건 아닐까.

홍승연 기자 lemonhs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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